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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정리
2018년 12월
겨울 비가 내린다. 베란다 문을 열고 보니 땅이 젖어 있었다. 우산 쓰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 것 봐서 아마 새벽에 내렸나 보다.
얼마 후 다시 내다보니 뿌옇게 안개가 낀 듯 고운 비가 내린다.
8시가 넘어 어제 끓여 놓은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그동안 미루었던 냉동실을 뒤집었다.
너무 많이 쌓여서 냉동실 문 열다가 꽁꽁 얼은 것 굴러 떨어져 발등 찧을까 걱정이었고, 무엇이 있는지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열었던 문을 닫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냉동실 윗칸 통 하나를 꺼내자 엄마가 더 궁금해 하시며 이것저것 들쳐보셨다.
오래된 것 빼 놓고,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일단 녹이기로 하고, 큰 지퍼백에 들어 있는 것들 작은 지퍼백에 넣고 이름을 크게 써 놓았다.
정리 된 통, 일단 냉동실 제자리에 놓고 다른 통을 꺼내 정리하는 방식으로 문에 있는 것까지 다 정리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깨끗하게 청소하고 모든 통에 있는 것들 종류대로 분류해서 매직으로 크게 써서 임시로 붙여놓았다.
고기와 생선, 간식, 국거리, 마늘, 김치양념. 수수가루 찹쌀가루. 청양고추, 파, 청국장. 이렇게 나누니 냉동실이 비었다.
지난겨울 수술 후 많이 드셨던 팥죽.
엄마께 갈 때마다 팥죽 옹심이로 쓰려고 너도 나도 넣어둔 찹쌀가루. 수수 부꾸미 드시고 싶다 해서 몇 번이나 갈아다 놓았던 수수가루. 한 곳에 모으니까 큰 지퍼백에 한 봉투씩 된다.
정체를 알 수 없게 문에 가득 쌓여있던 모든 봉지들 다 정리하고 나니 너무 깨끗하다.
엄마도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돋보기 쓰고 만져보고 궁금해 하시던 상태라 버린다고 해도 아쉬움도 없어 하신다.
아니 너무 많아서 찾지 못해 못 드시니 답답하셨겠지.
다음 주에 올 때 수납 박스도 준비하고 프린터로 글씨 크게 뽑아서 깨끗하게 다시 붙이기로 하고 일단 마무리 한다.
아침밥 한 수저 먹고 커피 한잔 하고 이제껏 서서 치우다 보니 12시 15분, 너무 배고프다.
녹여 놓은 소고기 스테이크 한 덩어리 굽고, 내가 먹을 것 조금 부족할 것 같아 냉동실 치우며 찾아낸 삽겹살 100g?을 구워서, 가지고 간 상추 곁들여 점심 식사를 한다.
불고기감 꺼내서 양념, 한 번 드실 수 있는 양 3통 만들어 냉동실에 2통 두고 한 번 드실 것 냉장실에 넣었다.
다시 팥죽 끓이기 준비. 어제 팥 칼국수 할 때 팥을 좀 넉넉히 했어야 하는데 막상 팥죽 하려니 팥이 너무 적다.
밥에 넣으려고 삶아 냉동실에 넣어 둔 팥, 다시 압력솥에 삶아내어 팥물 만들어 냄비에 준비해 드리고 엄마께 찹쌀가루 꺼내 옹심이 만드시라 했다.
나는 씻고 갈 준비를 한다.
팥죽 끓여 엄마 드리고 나는 맛만 보는 정도로 몇 수저 뜨고 3시에 집을 나왔다.
의료보험 급여일수 초과되었다고 해서 주민센터 들려 일 보고나니 전철시간(급행)이 많이 남았다.
조금 더 있다 나올걸 그랬다. 주민센터 일마치고 간다고 전화를 드린다.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더 하다.
비는 여름 소낙비처럼 내린다.
12월인데 봄날이다. 코트는 젖었고, 너무 푸근해서 목도리를 풀고 싶었다.
전철을 타고는 이어폰을 꽂고 잠이 들었다.
목도리를 풀고 잠자다 깨니 선풍기는 돌아가고 있고, 전철 안은 붐비고, 몇 번을 자다 깨고. 피곤하고 허리까지 아프다.
집에 도착.
애들이 알아서 잘 찾아먹고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해 놓았다.
나 피곤하다고 앉아있으라고 지들이 알아서 해 준단다.
고맙다.
자녀가 없는 노후는 어떨지....... 지금으론 상상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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